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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파파 일상

김장김치 수육, 1년에 딱 한번뿐인 이벤트

by 꿈이파파 2020. 12. 16.

 

 

 

10월 말이 되면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추수감사절을 지내게 되는데요.

 

이날은 크리스마스와 함께 북미에선 가장 큰 행사 중 하나로 온 가족이 모여 어마어마한 크기의 칠면조 구이, 매시포테이토, 그레이비 소스, 각종 야채를 곁들어 푸짐한 식사를 먹는 날입니다.

 

쌀쌀한 늦가을, 식사 후 배가 부를대로 불러 햇볕 쏟아지는 쇼파 위에서 나른하게 낮잠 자던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김장추억, 하나 (라떼는 말이야)

 

 

북미에 추수감사절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김장이 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떠올려보면 1년 중 가장 큰 이벤트는 단연 '김장'이 아니었나 합니다.

(졸업식, 입학식을 제외하고 말이죠)

 

 

할머니 집에 가면 할머니를 중심으로 숙모, 작은숙모, 이모, 엄마가 팀을 이뤄 배추를 만지작만지작 하는 동안 나, 사촌 등 꼬마들은 옆에서 알짱거리며 얼른 돼지 수육이랑 밥먹기만을 고대합니다.

(할아버지 비롯한 남자어른들은 따뜻한 방 안에 앉거나 누워 티비를 보시곤 했죠 - 정말 평범하면서도 흔한 일상입니다)

 

 

 

 

노느라 지루할 새도 없었지만, 마침내 저녁시간이 다가오고 할머니팀은 아이들 배고플새라 분주하게 마무리 작업에 돌입합니다. 절인배추에 양념을 발라두고서 돼지 수육을 찌고, 흰쌀밥을 짓고, 바싹한 김도 구워내죠.

 

 

 

김장하는 날은 반찬이 소박합니다. 하지만 정말정말 푸짐한 식사이기도 합니다.

 

 

김 모락모락 올라오는 고봉밥에 손으로 길쭉하게 찢은 김치(그래서 김장하는 날 우리 모두의 손은 다 빨갛게 물이 든다죠), 따뜻하면서 말랑한 수육, 그리고 풍미를 덧입혀 줄 김까지 - 그렇게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합니다.

 

 

 

 

 

 


김장추억, 둘 (요즘은 말이지)

 

세월은 흐르고, 그때 밥달라고 조르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 누구는 결혼도 하고 심지어 애엄마, 애아빠도 되기도 했는데요(저처럼요).

 

 

팀의 중추를 이루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점차 이 '김장 이벤트'는 각자의 추억 속에서만 남아있게 됩니다.

 

 

하지만 그 당시 할머니 밑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던 엄마, 이모, 숙모들은 또 그들만의 방식으로 각자의 팀을 꾸려나가기 시작합니다.

 

 

 

(좌) 무 :: (우) 배추

 

2020년, 변한 게 하나 있다면 이젠 '남자'까지 대동이 되었다는 건데요.

 

온 가족이 함께 먹는 거니 당연히 남자 또한 동참해야하는 것임에도 그땐 왜 그렇게 편가르기(?)를 좋아했을까요.

 

일손이 부족하고, 엄마의 입김이 거세지자 아빠도 마냥 앉아서 티비만 볼 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작은 텃밭이 있기에 가을철이 다가오면 배추씨를 뿌리고 무럭무럭 자라나도록 열심히 가꾸어 준답니다.

 

배추들이 땅 위에서 솟아오르고 크기가 점차 커져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방앗간 가서 고춧가루 빻고, 젓갈 사러 남해안 가고, 멸치다시 육수 준비, 그리고 이따끔 굴도 준비합니다. 김장 시기에 맞춰 모든 재료들을 사전에 준비해두기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때가 왔습니다.

 

올해는 평소보다 조금 늦은 12월 초에 김장을 했는데요.

 

배추를 뽑고, 간이 배이고 말랑해지도록 소금을 뿌려 하루 절이고, 씻어내면 마침내 배추도 양념 입을 준비를 마치게 됩니다.

 

양념은 생강, 간마늘, 고춧가루, 젓갈 등등 온갖 재료들과 이것들이 잘 버무러지도록 멸치육수를 부어줌으로써 마침내 완성이 된답니다.

 

 

 

 


 

D-Day

여러 개의 큰 대야가 부엌 군데군데 놓여져 있는데 플라스틱 대야에는 산처럼 수북히 쌓인 절인 배추, 알루미늄 대야에는 양념과 옆에 꽂혀있는 국자 그리고 썰인 무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고무장갑을 끼고 본격 양념바르기를 시작합니다.

 

 

스마트폰을 옆에다 두고 노래 듣다가 이따끔 라디오 들으며 중간중간 뉴스 - 오늘의 확진자수, 전세난, 누구누구는 횡령으로 구속수감 등등세상의 소식들을 말없이 듣습니다. (가끔씩 욕설도 들리는?)

 

 

손은 여전히 분주히 움직이며 양념이 입혀진 배추들은 준비해 둔 김치통 안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합니다.

 

 

 

 

배추의 절반 정도가 통 안에 담겼다 싶으면, 미리 사둔 돼지 통삼겹을 냉장고에서 꺼냅니다.

 

 

냄비에 물을 살짝 부은 뒤, 그 위에 솔잎을 수북히 쌓고 월계수잎 몇 장을 깔아둡니다.

 

그리고 커다란 고기를 위에 툭 올려놓고 뚜껑을 덮은 뒤 약불에 서서히 익도록 놔둡니다.

 

 

 

분주히 놀던 조카녀석은 냄비 밖으로 새어나오는 돼지고기 냄새를 맡고 얼른 먹고 싶어 할머니를 조릅니다.

 

 

 

 

 

 

그렇게 마지막 배추까지 양념작업이 끝날 때쯤, 기특한 밥솥 녀석도 취사를 완료됐다며 모두를 기쁘게 합니다.

 

 

꼭 옆에서 훔쳐먹는(?) 이도 있기 마련입니다

 

알배추들은 양념이 입힌 채로 통 안에 들어갔고, 나머지 작은 애들은 오늘 식탁 위에 올라올 예정입니다.

 

 

 

 

 

새빨간 양념을 입힌 2020년 김장김치, 완성입니다.

 

 

 

 

 

푹 익은 수육도 꺼내서 큼지막하게 썰어냅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참을성 없는 몇몇은 접시 위에 올라오기도 전 미리 몇 점 낚아채는 데 성공하기도 합니다.

 

 

 

 

 

오늘 주인공, 김장김치 그리고 수육

 

 

그리고 예전부터 그래왔듯, 김장할 땐 쌀밥 먹는 날이라며 밥그릇 위 가득 담긴 새하얀 쌀밥, 그리고 옆에 놓여있는 갓구운 김까지. 애, 어른 할 거 없이 모두 침묵 속에서 젓가락 움직이기에 바쁩니다.

 

 

 

 

하지만 제가 또 누군가요? 하나의 블로그를 운영하는 어엿한 블로거가 아니겠습니까.

 

 

다들 바삐 먹는 와중, 오직 저만이 이렇게 사진으로 기록 남기는 기특함(?)도 보입니다.

(어차피 아무도 신경 안 쓸 테지만요)

 

 

 

 

 

"따끈하면서도 폭신하게 삶긴 돼지수육과 아삭한 김치 한 입. 누가 싫어할까요?"

 

 

배불리 잘 먹었습니다.

 

 

 

요즘 한참 핸드드립에 빠져 있는 아빠가 모두에게 준다며 커피를 직접 내리기까지 했는데요. 먹으며 예전 초딩 때 생각이 나 추억에 잠기다가 결국 쇼파 위에 퍼질러 누워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답니다.

 

 

 

 

겨울철 김장김치는 우리에게 추억이자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음식입니다.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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