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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파파 일상

류시화 시인이 머물던 인도 다르질링 :: 히말라야 칸첸중가를 바라보다

by 꿈이파파 2020. 10. 7.

 

류시화 시인이 머물던 인도 다르질링 :: 히말라야 칸첸중가를 바라보다

 

 

 

 

안녕하세요 꿈이파파입니다.

 

 

오늘은 다소 색다른 포스팅을 해보려고 합니다.

 

 

20대 저의 삶은 여행뿐이었습니다. 낯선 언어가 흐르는 이국땅에서 이방인이 된다는 건 참으로 묘한 느낌이었습니다. 그게 마냥 싫지 않았고 그렇게 서서히 여행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았습니다. 여행을 가지 않은 때에도 항상 여행만을 생각했고 스스로 저를 ‘여행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죠.

 

 

인도 다르질링에서

 

 

그러곤 시간이 흘렀고 지구별 떠돌던 방랑자의 그림자를 마음속 깊숙이 넣어두게 되었습니다. 마치 10대 시절 추억이 담긴 다이어리를 서랍 안 가장 은밀한 곳에 넣어두곤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잊고 지내는 것도 익숙해졌고 적응도 되더군요.

 

 

사진첩을 뒤적이던 어느날이었습니다. 우연찮게 옛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고 추억에 잠기게 됩니다. 예전 같았으면 그렇게 몽상 속에서 한참을 헤매다 현실로 돌아왔을 텐데 이젠 여기 블로그에다 그 추억들을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한편의 짤막한 수필이라 생각하시고 읽어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당시 여행지에서 느꼈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 드리고자 경어체는 생략하였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

 


 

 

 

무슨 병이 나서 그랬나 모르겠다.

 

배낭 한켠에 론리플래닛도 아니고 왜 류시화 시인의 시집이 들어있었을까? 그 당시에는 그게 맞다고 믿었고 자신있게 인도로 날아갔다. 

 

비행기는 밤늦게 착륙을 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있었다. 뭐가 그리 못마땅했던지 신발도 벗지 않고 그대로 누워서 잠을 청했다. 그러나 잠은 쉽사리 오지 않았고 머릿속 내내 이생각만 맴돌았다.

 

‘그 시인한테 속았다’

 

 

 

그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출간 기념 사인회였다. 검정색의 긴 장발머리에 선글라스를 쓴 시인을 보며 어린 소년마냥 가슴이 두근거렸고, 만년필로 쓱싹 사인과 함께 나에게 웃음을 씩 지어줬을 때 나는 그만 마음 속 커다란 동경이 일어났다.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할 수 없었으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읽으며 밤을 지새웠다.

 


 

근데 이게 뭔가. 게스트하우스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던 베개 대신 두툼한 책을 베고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서글픈 감정만 잔뜩 느끼고 있었으니.

 

포근한 내 침대로 돌아가고 싶었고 그저 꿈이기만을 바랬다. 벌써 8년이나 훌쩍 지났지만 그 꿈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꿈 속에서 나는 한국에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내 방이 익숙하면서도 무척 애틋하게만 느껴졌다. 꿈은 거기까지였고 날이 밝았다.

 

눈을 떠보니 여전히 그 숙소 안이었고 내 몸은 여전히 꼭 웅크린 채 침대 위에 올려져 있더라.

 

그렇게 인도 여행은 시작되었다.

 


 

떠돌고 떠돌다 나는 인도 동북부에 있는 작은 마을인 다르질링에 도착하게 되었다. 내가 여태껏 걸어다니며 봐왔던 인도가 아니었다. 새파란 하늘 저너머로 구름 같은 히말라야 산맥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산골 구석구석 작은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나는 시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아름답다라고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다르질링은 홍차로 유명하다. 영국 식민 지배하에 있던 시절, 이곳에서 수확되는 홍차는 굉장히 특별했다고 한다. 세계 3대 홍차라고도 불릴 정도로 그 위상이 높다. 그 위상에 걸맞게 마을 어디를 가든 찻집이 보였고 아무리 값싼 차라도 맛은 훌륭했다. 

 

찻잎 자체가 다른 지역보다 신선하다던가 풍미가 더 좋다는 등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시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여서였을까? 이유야 어떻건 다르질링 차가 조금은 더 각별하게만 느껴졌다.

 


 

바람의 찻집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던 시인의 시를 떠올려 보았다. 어린 뱀의 눈을 하고 해답을 구하기 위해 떠났으나 해탈은 멀고 허무는 가까웠다고 말하는 시인.

 

이따끔 별똥별의 빗금보다 밝게 빛나는 깨달음도 있었다고, 외딴 행성 바람의 찻집에 앉아 그는 그렇게 시를 써내려 갔으리라.

 

 

**류시화 시인 <바람의 찻집에서> 인용

 

 

 

 

그렇게 그곳 작은 마을에서 2주를 머물고 동쪽에 있는 콜카타로 내려가게 되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그 이후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선 10월의 다르질링이 지워지질 않고 남아있다.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산길 터벅터벅 걸으며 저 멀리 히말라야 산맥, 8586미터로 세계에서 3번째로 높다는 칸첸중가를 매일 같이 바라보았다. 

 

 

 

 

구름처럼 떠있는 하얀 산맥들이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래서인가, 왠지 저 산 속 어딘가에서 그 시인이 작은 집을 지은 채 앉아서 시를 써내려가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젖곤 했다. 가끔씩은 내가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시인이 아니니깐, 변명을 하고 차를 마시러 돌아갔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한 아저씨는 스웨덴에서 온 작가였다. 며칠동안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었는데 도무지 기억에 남질 않는다.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에 남는다. 당시 우리가 머물던 싸구려 게스트하우스는 난방이 들어오질 않았다. 그 작가는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매일밤 럼주를 두어잔 마시고 잠을 청한다더라.

 

그러면서 배낭 속에서 꺼낸 럼주를 나에게도 건네주었다. 뱃속이 따뜻해지며 온기가 서서히 올라왔으나 여전히 으슬으슬 추웠던 기억.

 

 

그 별것도 아닌 일이 왜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걸까. 나는 기억력이 그리 좋지도 않은데.

 

 

하지만 키보드를 두들기는 지금, 잊혀진 줄만 알았던 그 기억들이 머릿속 폭죽을 터뜨린 것마냥 이곳저곳에 떠다닌다. 바람의 찻집에서 마시던 풍미 그윽한 다르질링 티가 입안 가득 남아있는 듯하다.

 

 


 

이렇게 저 꿈이파파의 첫 여행기 포스팅을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쓰다보니 마음 속에 알 수 없는 여운이 떠다니는 듯만 하네요^^ 이러다 인도행 비행기 티켓 찾아보고 있진 않을까 걱정도 되구요.

 

 

여행기는 쉬어가는 포스팅처럼 이따끔씩 올려볼까 합니다 :)

 

날씨가 으슬으슬 추워지네요. 모두들 감기 조심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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